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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별세 여고시절 가수 본명 출생 나이 노래

한지음🌹 2022. 12. 15. 13:10

    이수미 별세 여고시절 가수

    여고 시절과 같은 대중가요를 부르던 1970년대 가수 이수미가 2일 오후 9시 12분 별세했습니다.
    유족들은 3일 고인이 지난해 12월 폐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투병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1969년 목포 KBS 노래자랑에서 5연승을 거두며 뛰어난 가창력으로 가수로 인정받았습니다.

    1971년 뒤늦게 후회만 남기고 데뷔한 그는 ‘내 곁에 있어줘’, ‘두고 온 고향’, ‘잊을 수 없어’ 등의 앨범을 계속 냈다. 그 중 1972년에 개봉된 “여자고등학교”가 큰 인기를 끌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수미 피습 사건으로 인해 매우 힘든 삶을 살다가 다시 앨범을 내면서 극복한 듯했지만, 마리화나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2003년에 가수 활동을 재개했고, 이어서 개신교 신앙 생활과 복음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그는 한국가수협회 이사로도 활동했습니다.

     

    이수미 연루된 사건들

    대천 해수욕장 자해사건

    당시 인기가 절정에 달해있었던 때였는데 1973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천 해수욕장에서 칼을 든 괴한이 촬영 장소에 갑자기 난입해 이수미를 공격했다.

    경찰은 이수미가 연인에 의해 실연을 당해 자해를 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이수미가 실제로 피습을 당한 사건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짧은 머리의 남자들이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는 피해를 막기위해 이수미가 경찰에 거짓 진술을 했던 것이다.

    이수미는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등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자해를 했다고 거짓말했다. 피습이 한 순간에 ‘자해소동’으로 바뀌었다고 당시 엄청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털어놨다.

     

     

    이수미 대마초 연루 사건

    1975년에 연예계에 대마초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대마초 사건에 연관 됐다. 그녀는 억울했지만 들어주지 않았고 무기한 방송정지 처분을 받고 사실상 연예계를 떠나게 됐다. 당시에 대마초를 피는 연예인들과 가깝게 지냈고 그 자리에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수미는 “그때 모든 걸 내려놨다. 20년을 아, 소리 한 번 안 내고 지내다 보니 어느 날부터 말이 나오지 않았다”며 실어증 환자가 됐던 사연을 고백했다.

     

     

    가요계 데뷔

    고인은 1952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1969년 본명인 이화자로 ‘당신은 갔어도’를 발표하며 가요계 데뷔를 했다. 이듬해 예명인 이수미로 바꾼 뒤 1972년 발표한 ‘여고시절’로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신인가수에게 주는 ‘낙엽상’을 비롯해 연말 10대 가수상을 잇달아 수상했다. 이 밖에도 ‘내 곁에 있어주’ ‘방울새’ ‘사랑의 의지’ ‘오로지’ 등 많은 히트곡과 함께 1970년대를 풍미했다.

    그는 2003년 음반 <또 다른 세상에서>를 발표하며 재기를 시도했고 기독교 복음성가 활동도 펼쳤다. 지난 5월 투병 중 발표한 신곡 ‘별이 빛나는 이 밤에’가 유작이 됐다.

    유족으로는 남편 배제동씨와 자녀 이정은·배정아씨, 사위 이정열씨, 남동생 기성(KPGA 선수·엑스페론골프아카데미 원장)·기욱(해인 법무실장)씨와 언니·여동생 등 다섯 자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