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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트로트 본명 자녀 나이 히트곡

한지음🌹 2022. 12. 15. 10:08

    심수봉 프로필

    • 본명 : 심민경 (沈玟卿)
    • 출생 : 1955년 7월 11일 (66세) 충청남도 서산군
    • 본관 : 청송 심씨
    • 혈액형 : O형
    • 부모 : 아버지 심재덕, 어머니 장형복
    • 형제자매 : 언니, 이부 남동생 1명, 이부 여동생 1명
    • 배우자 : 김호경
    • 자녀 : 슬하 2남 1녀
    • 학력 : 인화여자고등학교 (졸업) / 명지대학교 (경영학 / 학사)
    • 종교 : 불교 → 개신교(침례회)
    • 직업 : 가수, 아티스트
    • 소속사 : 라이트웨이브 엔터테인먼트
    • 데뷔 : 1978년 MBC 대학가요제 ‘그때 그 사람’
    한국 가수 트로트와 발라드의 틈새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메운 트로트 발라드의 선구자죠.
    그는 1955년 7월 11일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심수봉 어린시절

    그녀의 가족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음악을 해온 음악가 가족이었고, 그녀의 아버지, 삼촌, 그리고 이모 모두 음악을 했습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그녀는 또한 음악가의 삶을 걷습니다.

    그의 주요 전공은 재즈였고, 그는 또한 최고의 음악가들만이 설 수 있는 미국 8부 무대에서 로큰롤 밴드 “논스톱”의 드러머로 활동했습니다. 트로트 가수로만 알았던 사람들은 그녀가 드럼을 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곡은 카펜터의 카렌 카펜터와 “드럼 연주 여성 보컬리스트”로서도 이야기됩니다.”

    한편, 심수봉은 원래 서산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어머니가 이혼 후 이사했을 때, 2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서울에 있는 은로 초등학교로 갔습니다. 그 후, 그녀는 영등포에 있는 여자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입원 치료를 위해 2년 더 휴학했습니다. 후에, 그는 인천 인화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고 1974년에 19세의 나이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심수봉 박정희

    1975년, 박정희는 심수봉을 청와대 연회에 불러서 노래하게 했고, 이것이 앨범의 발매로 이어졌습니다.

    심수봉은 음악에 매우 재능이 있어서 다양한 악기에 능통했고, 그가 노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일했고, 청와대 연회는 이것의 일부였습니다.

    연회에서 심수봉은 나훈아의 노래를 불렀고, 가수 나훈아 자신이 그것을 듣고 감탄하며 앨범 작업을 준비했습니다. 이듬해, 1975년, 그는 신세계 레코드를 통해 앨범을 작업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국 앨범 작업이 취소되었습니다.

     

    학교생활

    심수봉씨는 같은 해 20살의 나이에 대학 입학을 준비했고 숙명여대 작곡과에 지원했지만 낙제했습니다. 재수 후, 그는 명지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978년, 명지대 경영학과에 재학하는 동안, 그는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대학가요제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의 음악적 성향이 포크나 록일 때 심수봉은 전공인 재즈가 아닌 트로트로 도전했지만 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좋은 점수를 주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너무 전문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저는 대학에 다녔어요.제사를 판단하는 기준이 대학생들의 신선함이었기 때문에 심수봉의 세련된 음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1등 수상자로 게스트로 출연한 여병섭(샌드페블즈의 보컬)은 발표 당시 대기실 심수봉 옆에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이 대상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더 기뻤습니다.

     

     

    음악인생

    음악을 들을 때, 피아노와 보컬이 빅밴드를 압도할 뿐만 아니라, 그 밴드는 화성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굴욕감을 보여줍니다.

    여병섭에 따르면, 그것은 밴드의 공연 실력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편곡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였다고 합니다. 악단이 준비한 편곡에 불만을 품은 심수봉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악단의 리더와 싸웠다고 합니다.

    결국, 그들은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공연을 했고, 결국 불화가 불가피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그 사람”의 히트곡으로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다시 말해서, 임백천, 노사연, 배철수를 포함한 이 시기에 그녀와 경쟁했던 연주자들은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상을 타지 못했지만, 후에 모두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대상은 부산대학교 재건단에게, 노사연은 금상을, 배철수가 속한 그룹 런웨이는 은상을 수상했습니다.

     

    히트곡

    “그때의 남자”의 히트곡으로, 그녀는 인기 연예인이 되었고, 박정희도 그녀를 좋아했고, 그래서 그녀는 왕실에서 열린 술자리에 초대되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심수봉이 못생겼다며 병풍 뒤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1990년대 초 토크쇼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헛소문이었다고 스스로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를 만난 후, 심수봉은 모든 종류의 시련에 휘말립니다. 1979년 10월 26일, 심수봉은 궁정동 마당에서 모델 신재순과 함께 박정희의 술자리에 불려갔습니다.

    평소랑 다를 바 없는 술자리인 줄 몰랐어요… 김재규가 차지철과 박정희를 살해했을 때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합동수사본부가 집중수사를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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